“베를리오즈는 깊은 印象을 받거나 衝動的인 便이었다.
그런 感情은 늘 極端的으로 나타났고, 그래서인지 스스로 自身을 가리켜 ‘火山’이라고 했다.”
베를리오즈의 後輩였던 구노가 한 말이다. 音樂과 삶의 境界를 完全히 허물어 音樂과 삶을 同一視했던 極端主義者. 그가 바로 19世紀 프랑스 浪漫主義에 劃期的 轉機를 마련한 베를리오즈다. 當時로서는 想像도 할 수 없던 管絃樂法을 驅使해 聽衆을 驚愕으로 몰고 갔던 그는 作品을 쓸 때 徹底히 標題的人 性格을 끌어들인 張本人이다.
프랑스 交響曲의 最高峯에 서 있는 ‘幻想交響曲’은 베를리오즈의 나이 27歲 때인 1830年, 로마大賞을 받기 前에 作曲된 曲이다. 베를리오즈는 1827年 周圍의 反對를 무릅쓰고 파리音樂院에 入學해 作曲에 邁進하던 中, 파리 公演을 하고 있던 英國 셰익스피어 劇團의 女俳優 해리엇 스미드슨에게 첫눈에 마음을 빼앗긴다. 하지만 人氣 最頂上의 俳優가 가난한 音樂徒를 만나줄 理 萬無했다. 베를리오즈는 自殺까지 생각할 만큼 心理的 恐慌狀態에 빠졌고, 3年 뒤 한 女人에 對한 사랑과 詛呪를 그대로 樂譜에 옮겨 畢生의 傑作이 된 ‘幻想交響曲’이 誕生했다.
1828年 創團한 파리音樂院 오케스트라는 2年 뒤 ‘幻想交響曲’을 世界 招演했다. 18世紀 中盤 以後 파리는 徹底한 音樂의 消費 都市였고, 獨逸 오스트리아 러시아에 비해 오케스트라의 實力이 뒤졌다. 하지만 파리音樂院 오케스트라는 健在하며 世界 頂上級 實力을 維持해왔다. 레오폴드 스토코프스키, 샤를 뮌슈 等 傳說的인 巨匠 指揮者들이 操鍊했던 파리音樂院 오케스트라는 1967年 파리 오케스트라로 이름을 바꿨다.
바로 이 파리 오케스트라가 23年 만에 韓國을 訪問한다. 獨逸 出身의 피아니스트이자 指揮者인 크리스토퍼 에센바흐의 指揮棒 아래 그들이 가장 잘 연주할 수 있는 베를리오즈의 ‘幻想交響曲’으로 韓國 音樂팬에게 人事한다(11월11일, 高陽아람누리 아람音樂堂, 1577-7766). 特히 이番 舞臺에서는 1830年 初演 當時의 오리지널 ‘벨’을 使用할 豫定이어서 더욱 期待를 모은다.
서울 舞臺에서는 라벨 ‘라 발스’, 스트라빈스키 ‘불새’, 베를리오즈 ‘로마의 謝肉祭’ 等 亦是 파리 오케스트라가 最上으로 연주할 수 있는 興味津津한 作品들을 선보인다(11월12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2020-1620).
‘幻想交響曲’
의 敎科書的인 明礬은 亦是 샤를 뮌슈가 指揮한 파리 오케스트라의 創團 記念 첫 錄音 音盤이다. 파리 오케스트라의 灼熱하는 에너지로 充滿하다. 수많은 오케스트라가 ‘幻想交響曲’을 音盤으로 남겼지만 愛好家들의 귀를 깜짝 놀라게 했던 것은 유럽이 아닌 美國이었다. 바루잔 코지眼科 유타 심포니 오케스트라가 1982年 演奏한 ‘幻想交響曲’은 作曲家의 廣幅함이 그대로 드러나는 名演이다. DVD로는 마리스 얀손스의 指揮棒이 으뜸이다. 4世紀 로마帝國의 콘스탄틴 皇帝에 依해 建立된 터키 이스탄불의 性 아이린 敎會에서 實況 錄音한 것이다. 孤高한 雰圍氣를 풍기는 古代 建築物에서 펼쳐지는 마리스 얀손스와 베를린 필하모닉의 베를리오즈는 聽衆을 幻想으로 몰고 간다(스펙트럼 DVD SPD 116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