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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톳빛 女神이 만든 ‘과일 天國’|週刊東亞

週刊東亞 5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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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톳빛 女神이 만든 ‘과일 天國’

  • 글·寫眞 조남민

    入力 2007-05-02 18:4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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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漢字로는 越南(越南)이라고 쓰는 베트남.

    우리로서는 1960年代 베트남戰 派兵과 關聯된 슬픈 現代史의 因緣 때문에 그곳을 訪問하며 漠然히 緊張하는 境遇가 많다. 하지만 막상 베트남 땅을 밟아보면 東南아시아 여느 旅行地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걸 느낄 수 있다.

    中國의 오랜 支配와 近代 西歐列强의 植民統治를 이겨낸 强靭한 民族답게 베트남人들은 어딘지 모르게 堂堂해 보이기까지 한다. 뭐, 그냥 그렇게 보이는 것으로 끝이지만…. 크지 않은 體軀는 便安함을 주며, 사람들은 大體로 親切하다. 觀光客을 많이 相對해본 솜씨가 여기저기에서 묻어나 그리 낯설지 않다.

    황톳빛 여신이 만든 ‘과일 천국’

    평화롭게 櫓를 저으며 메콩江을 건너는 流域의 마을 住民(왼쪽). 메콩江 支流의 密林을 헤치며 航海하는 나룻배 體驗.

    戰爭으로 荒凉해진 이 땅에 本格的인 希望의 새싹이 돋아난 건 도이모이(開放) 政策에 依한 베트남式 社會主義가 빠르게 定着하면서다. 이는 굶고서는 理念도 體制도 없다는 當然한 理致가 適用된 것이다.

    길쭉한 模樣의 國土 北쪽에 자리한 首都 하노이는 政治의 中心地이고 베트남 最大 都市 호치민(舊 사이공)은 經濟의 中心地라고 보면 理解하기 쉽다.



    베트남 經濟의 起點인 메콩델타(메콩 三角洲)로 가는 길은 호치민에서 出發한다.

    普通 ‘메콩델타 투어’라 불리는 이 旅行은 호치민 市內 곳곳에 있는 旅行社에서 티켓을 購入해 떠나는 것이다(베트남에는 旅行者를 위해 各 都市間의 移動手段을 提供하는 오픈투어 및 都市와 周邊 觀光地를 連結해주는 프로그램이 잘 갖춰져 있다. 大部分 旅行者들이 이 시스템을 利用하며 값도 低廉한 便이다).

    메콩델타에서 무엇을 보느냐에 따라 當日 투어와 더 긴 日程의 투어로 나뉘는데 나는 1泊2日을 擇했다. 地圖와 案內書를 살펴보니 이틀이면 適當할 것 같다는 判斷이 서기도 했고, 알뜰旅行을 하는 듯한 다른 外國 旅行客들의 選擇도 參考했다. 실은 짧은 英語로 이것저것 물어보기도 겁나는 터라 오케이를 連發했더니 바로 票를 끊어주었다.

    아침 7時부터 호치민의 사이공강을 보트로 3時間 동안 가로지르며 미토(My Tho)로 向했다. 危殆롭게 세워진 水上家屋과 熱帶나무, 배에 실린 다양한 物品을 구경하는 것도 즐거웠지만 무엇보다 爽快했던 건 皮膚에 와닿는 산들바람이었다.

    미토에서는 과일農莊과 密林을 通過하는 나룻배 體驗을 했다. ‘論라’라 불리는 베트남 帽子를 쓴 아낙 둘이 앞뒤에 앉아 4名의 乘客을 나룻배에 태우고 몇 分間 江 支流의 密林을 헤치며 航海하는 이 體驗은 나름대로 韻致가 있었다. 한便으론 人爲的으로 ‘設定’된 코스와 밀려드는 旅行客들로 疲勞를 느끼는 아낙들의 모습에서 즐거움보다 未安함이 앞섰다.

    인도차이나 젖줄 … 다채로운 삶 ‘水産市場’ 늘 북적

    그 다음 向한 곳은 코코넛 農場. 코코넛 열매 껍질로 캔디를 만드는 農場 人夫들의 手作業 過程은 무척 흥미로웠다. 이곳에 반한 觀光客들은 大部分 紙匣을 꺼내 코코넛 캔디를 사는 데 餘念이 없었다.

    하루 終日 메콩江 여기저기를 다니며 큰 보트, 작은 보트로 여러 番 나눠 타기를 反復하는 바람에 어디가 어딘지, 어디로 가는지도 正確히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메콩江의 수많은 支流에서 다채로운 삶을 살아가는 그들의 모습에서 生動感을 느낄 수 있었다.

    황톳빛 여신이 만든 ‘과일 천국’

    배 위에서 고기를 파는 商人(왼쪽). 호치민시 周邊의 水上家屋.

    하룻밤을 묵기 위해 델타地域 最大 都市 칸토(Can Tho)에 到着한 것은 늦은 저녁 무렵이었다. 그곳에 머물기로 決心한 것은 水上市場을 보기 위해서였다. 가장 規模가 큰 ‘카이랑 水上市場’은 이른 아침부터 북적댔다. 뱃머리에 올빼미 눈을 그려 넣은 크고 작은 배들. 여기에 저마다 다양한 物件을 싣고 온 商人들이 製品을 사고파는 모습은 델타地域의 가장 印象 깊은 場面이었다.

    과일은 勿論 고기, 빵, 飮料水 等 食料品과 生必品의 賣買價 모두 움직이는 배 위에서 이뤄졌다. 耕耘機 엔진을 改造해 스크루에 連結한 改造型 나룻배와 櫓를 젓는 쪽배가 사람들의 主要 移動手段이었다.

    호치민 距離가 시클로(人力車)를 끄는 老父(老夫)와 날렵하게 오토바이를 모는 푸른 아오자이의 少女가 調和를 이룬다면, 이곳은 엔진 달린 배를 몰며 과일을 파는 少年과 反美(低廉한 빵의 一種)를 팔기 위해 힘겹게 나룻배의 櫓를 젓는 老婆가 共存한다. 언뜻 보기엔 매우 混雜한 듯하지만, 그들만의 秩序가 分明 存在하고 있었다.

    티베트 高原에서 發源해 미얀마 라오스 泰國 캄보디아를 거쳐 베트남까지 오는 4500km의 메콩江(江이 여러 個 합쳐졌다는 意味를 지닌다)은 이렇게 인도차이나의 젖줄 구실을 忠實히 하고 있다.

    過去엔 그저 물이 푸르고 맑아야 ‘강(江)’이라고 여겼다. 하지만 배에 멍하니 앉아 있다 과일장수가 내민 파인애플 조각을 받아들며 불현듯 생각이 바뀌었다. 흙湯물로 뒤범벅된 生動感 넘치는 이 江이 오히려 ‘강’이나 ‘젖줄’이란 表現과 어울린다고 느껴진 것. 달디단 파인애플을 한 조각 베어무는데 갑자기 내 머릿속엔 ‘平和’라는 單語가 떠올랐다. 混亂스러웠다.

    애初 크메르 帝國 所有였던 메콩델타를 最近 武力으로 倂合한 것은 ‘平和’와는 距離가 먼 베트남의 行動이 아니었던가. 폴 포트 政權을 逐出하던 當時를 아직도 記憶하는 크메르人이 相當數 살고 있는 이 地域에서 느껴지는 平和라니….

    그러나 난 곧 생각을 整理했다. 過去는 分明 重要하지만 現實은 더욱 重要하다는 것. 犧牲者와 征服者의 役割이 反復될지언정 生存의 現實에서는 누구나 認定하고 妥協할 수밖에 없으며, 그 妥協의 頂點에는 平和가 흐른다는 것을 말이다.

    호치민으로 돌아오는 길엔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었다. 살색 빛에 가까운 江물에서 물장구치며 沐浴을 하는 마을 꼬마들이 눈에 들어왔다.

    오늘도 메콩江은 悠悠히 흘러가고 있었다. 江물은 그렇게 소리 없이 平和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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