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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얼리로 女性 解放 具現한 先驅的인 디자인|週刊東亞

名品의 主人公

주얼리로 女性 解放 具現한 先驅的인 디자인

쟌느 鬪傷, 그리고 팬더

  • 민은미 주얼리칼럼니스트

    mia.min1230@gmail.com

    入力 2019-11-18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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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오션스 8’의 한 장면. 배우 앤 해서웨이가 팬더 브레이슬릿을 착용하고 있다. [Photo by Barry Wetcher © 2018 Warner Bros. Entertainment Inc.]

    映畫 ‘오션스 8’의 한 場面. 俳優 앤 해서웨이가 팬더 브레이슬릿을 着用하고 있다. [Photo by Barry Wetcher ⓒ 2018 Warner Bros. Entertainment Inc.]

    ‘메트 갈라(Met Gala)’는 每年 5月 美國 뉴욕 메트로폴리탄 博物館에서 開催되는 慈善 파티다. 여기에 톱스타 다프네(앤 해서웨이 分)가 까르띠에의 1500億 원짜리 다이아몬드 목걸이를 걸고 參席하게 된다. 이 情報를 入手하고 데비 오션(샌드라 불럭 分)을 主軸으로 디자이너와 寶石專門家, 소매치기, 해커 等 女性 7名이 役割을 나눠 寶石을 훔치고자 손을 잡는다. 여기에 톱스타 다프네까지 加勢해 女性 8人組 寶石詐欺團이 만들어진다. 

    2018年 開封한 犯罪 장르의 코미디 映畫 ‘오션스8’ 이야기다. 샌드라 불럭, 케이트 블란쳇, 앤 해서웨이 같은 有名 女俳優가 總 出演해 話題를 모았다. 다코타 패닝, 케이티 홈스, 킴 카다시안 等 華麗한 카메오까지 더해져 볼거리가 가득한 映畫. 

    行動 大將인 壘(케이트 블란쳇 分)가 그들의 타깃인 까르띠에 다이아몬드 목걸이 ‘鬪傷’을 說明하는 映畫의 한 場面이다.

    케이트 블란쳇 “그 목걸이는 ‘鬪傷’이라고 불려. 까르띠에 주얼리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였던 쟌느 鬪傷의 이름에서 왔지.” 

    샌드라 불럭 “다이아몬드 무게가 6파운드(2.72㎏)가 넘어.” 




    緻密한 計劃을 바탕으로 鬪傷을 손에 넣은 日當은 메트 갈라 現場에서 목걸이를 散散이 空中 分解해버린다. 6파운드가 넘는 다이아몬드 목걸이가 瞬息間에 分離돼 다른 목걸이, 귀걸이, 팔찌 等으로 變身하는 場面은 그야말로 壓卷이다. 그다음 華麗한 드레스로 갈아입은 一黨 7名이 주얼리를 各其 나눠 着用한 채 메트 갈라를 悠悠히 빠져나온다. 

    映畫는 華麗한 出演陣을 자랑했지만 鬪傷 목걸이는 또 다른 主演이었다. 映畫 속 臺詞대로 鬪傷은 實際 存在하는 목걸이일까. 正答은 ‘그렇다’이다. 쟌느 鬪傷(1887~1976) 亦是 虛構가 아닌 實存 人物. 1933年부터 1968年까지 까르띠에의 주얼리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였다.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란 오케스트라 指揮者처럼 寶石 디자인부터 企劃, 生産까지 全 過程을 책임지는 사람이다.

    ‘王의 寶石商, 寶石商의 王’

    까르띠에는 寶石과 오브제(objet·生活에 쓰이는 갖가지 物件을 作品에 利用한 것) 아트에서 世界 最高 權威를 가진 브랜드다. 파리 한 寶石商의 熟鍊工이던 루이 프랑수아 까르띠에가 1847年 그의 스승이던 아돌프 피카르로부터 保釋 아틀리에를 引受하면서 始作돼 일찍이 英國 에드워드 7歲(在位 1901~1910)로부터 ‘王의 寶石商, 寶石商의 王’이라는 稱頌을 받았다. 

    에드워드 7世는 까르띠에를 最初 ‘英國 皇室 寶石商’으로 임명했다. 그 後 까르띠에는 스페인, 포르투갈, 러시아, 詩庵(現 泰國), 그리스, 세르비아, 벨기에, 루마니아, 이집트, 알바니아 王室과 오를레앙 一家, 모나코 公國으로부터 皇室의 寶石商 資格을 附與받게 된다. 

    까르띠에는 設立者인 루이 프랑수아 까르띠에부터 3臺를 거치면서 寶石商으로서 名聲을 높여갔고 藝術 장르로 保釋 領域을 넓혔다. 그 歷史가 어느덧 172年에 이르렀다. 쟌느 鬪傷은 그 까르띠에 成長史의 中心에 선 人物이다. 

    이제는 브랜드의 象徵이 된 팬더(Panthere·프랑스語로 豹범) 컬렉션이 그와 密接한 關聯이 있다. 애初 팬더는 아프리카 旅行 中 먹이를 찾아 헤매는 팬더의 모습에 魅了된 까르띠에 創立者의 3代孫 루이 까르띠에가 이를 모티프로 한 作品을 만들기로 決心하면서 世上에 登場했다. 最初의 팬더 모티프는 1914年 오닉스(검정色 保釋)와 다이아몬드 스폿이 裝飾된 時計에 抽象的인 形態로 처음 선보였다. 

    銳利한 才致와 確固한 信念으로 ‘팬더’라는 愛稱으로 불린 쟌느 鬪傷에게 루이 까르띠에는 1917年 두 그루의 사이프러스 나무 사이를 거니는 팬더가 裝飾된 所持品 케이스를 膳物했다. 以後 1919年 쟌느 鬪傷은 팬더 모티프가 裝飾된 골드 및 블랙 캔턴 에나멜 素材의 所持品 케이스를 注文했고, 이때부터 팬더는 그만의 特別한 시그니처가 됐다. 

    쟌느 鬪傷이 루이 까르띠에를 처음 만난 건 第1次 世界大戰이 始作(1914)되기 前이었다. 그는 藝術家들이 넘쳐나는 파리 社交 모임에서 늘 돋보이는 存在感을 드러내던 뮤즈였다. 쟌느 鬪傷의 뛰어난 審美眼과 獨創性에 感銘받은 루이 까르띠에는 그에게 브랜드에 合流할 것을 提案했다. 핸드백 디자인부터 始作한 그는 所持品 케이스와 담배 케이스에 이어 곧 모든 種類의 액세서리를 디자인하기에 이르렀다. 以後 까르띠에 주얼리 디자인 專門家로 活躍하게 됐다.


    인터뷰를 하고 있는 
쟌느 투상(1950년대·왼쪽). 
쟌느 투상이 구상한 ‘새장에 갇힌 새’와 ‘자유를 되찾은 새’ 
브로치 디자인 도안. [Archives Cartier © Cartier]

    인터뷰를 하고 있는 쟌느 鬪傷(1950年代·왼쪽). 쟌느 鬪傷이 構想한 ‘새欌에 갇힌 새’와 ‘自由를 되찾은 새’ 브로치 디자인 도안. [Archives Cartier ⓒ Cartier]

    1933年 쟌느 鬪傷은 까르띠에의 뤼드라뻬 스튜디오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任命됐다. 주얼리를 만드는 匠人과 寶石 세팅 匠人으로 構成된 男性 職員들을 女性인 그가 이끌었는데, 當時 業界에서는 相當한 破格이었다. 루이 까르띠에가 自身을 代身할 後任者로 女性 디렉터인 쟌느 鬪傷을 임명한 것은 革新的인 行步를 豫告한 일이기도 했다. 

    그는 1914年부터 만들기 始作한 팬더를 모티프로 한 주얼리를 더욱 發展시켰다. 디자이너 피에르 르마르샹과 함께 파리 近郊에 있는 뱅센動物園을 자주 訪問하면서 마치 彫刻品과도 같은 새로운 실루엣으로 1940年代를 代辯하는 威風堂堂한 팬더를 製作했다. 이들이 만든 팬더는 業界에선 20世紀 가장 魅惑的인 주얼리 作品으로 꼽힌다. 

    쟌느 鬪傷을 얘기할 때 그의 强靭함을 言及하지 않을 수 없다. 第2次 世界大戰 中 파리가 占領된 1940年 브랜드의 心臟이라 할 수 있는 뤼드라뻬 부티크 窓門에 ‘새欌에 갇힌 새’라는 이름의 브로치를 陳列하면서 獨逸 當局에 抗議했다. 레드와 화이트, 블루 컬러의 슬픈 눈을 가진 나이팅게일이 裝飾된 브로치로 인해 그는 獨逸 나치政權下의 祕密警察 게슈타포의 審問을 받기도 했다. 마침내 1944年 파리가 解放되자 그는 새欌의 門이 활짝 열린 鐵窓 밖에서 날개를 편 ‘自由를 되찾은 새’라는 이름의 브로치를 디자인하기도 했다.

    하이 주얼리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까르띠에]

    [까르띠에]

    1948年 사랑을 위해 王位를 버린 것으로 有名한 英國 윈저 公爵은 쟌느 鬪傷에게 自身의 아내 심프슨을 위한 팬더 브로치를 注文했다. 그는 116캐럿 以上의 에메랄드 카보숑 위에 威嚴 있는 姿態를 선보이는 事實的인 모습의 팬더를 裝飾했다. 이 作品에서 까르띠에는 最初로 팬더 모티프를 實際 動物 같은 立體的인 3次元으로 發展시켰다. 當時 世界에서 가장 優雅한 女性 가운데 한 名으로 손꼽히던 윈저 孔雀夫人이 이를 着用하면서 팬더 컬렉션은 더욱 流行했다. 

    이듬해인 1949年 쟌느 鬪傷은 사파이어가 세팅된 팬더 브로치를 製作했고, 이 모델 亦是 윈저 孔雀夫人의 所有가 됐다. 이 팬더 브로치는 까르띠에 歷史에 큰 里程標로 남아 있다. 섬세한 彫刻品처럼 만들어진 3次元的 作品에 고양잇科 動物의 자연스러움을 加味한 브로치를 當時 新聞은 ‘주얼리系의 核爆彈’이라고 表現했다. 

    쟌느 鬪傷은 顧客의 性向을 反映해 주얼리에 表現했다. 시크하고 大膽하면서 자유로우며 自身만의 個性을 한層 더 돋보이게 하는 주얼리를 追求한 顧客 德分에 쟌느 鬪傷의 디자인 世界도 팬더를 넘어 虎狼이나 도마뱀 等으로 다양해졌다. 

    윈저 孔雀夫人은 벨트에 팬더 브로치를 着用하는 果敢한 스타일로 나타난 反面, 프랑스 映畫俳優 쟈클린 델루박은 도마뱀 네클리스를 着用하고 超現實主義 舞蹈會에 登場했다. ‘멕시코의 팬더’로 알려진 女俳優 마리아 펠릭스는 競馬場에서 뱀 모티프의 주얼리를 선보였으며, 20世紀를 代表하는 스타일 아이콘 데이지 펠로스는 舞蹈會에 힌두 모티프의 네클리스를 着用하고 登場했다. 또한 當時 가장 富裕한 女性 가운데 한 名이던 바버라 허턴은 虎狼이 모티프의 주얼리로 어깨를 裝飾한 적이 있다. 모두 쟌느 鬪傷의 作品이었다.

    20世紀를 代表하는 스타일 아이콘

    [Nils Herrmann, Collection Cartier © Cartier, Vincent Wulveryck, Collection Cartier © Cartier, N. Welsh, Collection Cartier ©Cartier]

    [Nils Herrmann, Collection Cartier ⓒ Cartier, Vincent Wulveryck, Collection Cartier ⓒ Cartier, N. Welsh, Collection Cartier ⓒCartier]

    映畫 ‘오션스8’에서 앤 해서웨이가 걸었던 鬪傷의 목걸이는 까르띠에 設立者 루이 프랑수아 까르띠에의 孫子 자크 까르띠에가 印度의 한 君主를 爲해 만든 목걸이였다. 까르띠에는 쟌느 鬪傷을 기리고자 映畫의 華麗한 主人公인 다이아몬드 목걸이에 ‘鬪傷’이라는 이름을 膳賜했다고 한다. 

    映畫 ‘오션스8’에는 鬪傷의 목걸이는 勿論, 팬더 컬렉션의 주얼리와 時計도 登場한다. 쟌느 鬪傷이 創造해 오늘날 까르띠에의 象徵이 된 팬더 컬렉션은 까르띠에 公式 웹사이트, 메종 淸潭 및 全國 百貨店·免稅店에 入店해 있는 부티크에서 直接 만날 수 있다. 

    寫眞作家이자 衣裳 디자이너인 세실 非턴(1904~1980)은 生前에 이렇게 말했다. 

    “燦爛한 빛의 다이아몬드가 瀑布水처럼 쏟아져 내리는 주얼리…. 東洋文化에서 靈感을 받아 誕生한 異國的인 브레이슬릿(팔찌)…. 뱀, 豹범, 虎狼이를 비롯해 다양한 動物 모티프… 누군가는 작고 가녀린 女性이 주얼리 藝術에 革新을 일으켰다고 말할지도 모른다. 오늘날 더욱 다양한 디자인의 주얼리를 經驗할 수 있게 된 것이 바로 그女 德分이라는 事實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한다.”


    映畫 ‘오션스8’에서 實名으로 登場하는 쟌느 鬪傷은 20世紀를 代表하는 스타일 先驅者이자 아이콘이었다. 세실 非턴의 描寫대로 ‘작고 가녀린 女性’李 주얼리 歷史에 남을 藝術 革新을 일으킬 수 있었던 背景은 무엇일까. 주얼리 專門家들은 그가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精神을 지녔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는 주얼리를 ‘獨立性의 象徵’으로 여기던 모든 女性의 堂堂한 롤모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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