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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韓 ‘版갈이 大戰’ 參謀는 누구냐|주간동아

週刊東亞 8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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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韓 ‘版갈이 大戰’ 參謀는 누구냐

‘2流 軍 首腦部’가 强勁 局面 主導…對南·對美 라인으로 役割 交代

  • 황일도 記者·國際政治學 博士 shamora@donga.com

    入力 2013-04-29 13:3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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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3月 29日 ‘朝鮮中央通信’은 寫眞 한 張을 公開했다. 이날 0時가 넘은 時間에 金正恩 北韓 勞動黨 第1祕書가 軍 最高首腦部를 緊急 召集했다는 內容이었다. 寫眞에는 현영철 人民軍 總參謀長, 이영길 總參謀部 作戰局長, 김영철 偵察總局長 兼 部總參謀長, 김락겸 戰略로케트群 司令官이 金 第1비서 뒤에 서서 作戰文書를 檢討하는 場面이 담겼다. 金正恩이 深夜에 最高司令部 會議를 召集하고 이를 北韓 媒體가 곧바로 傳한 것은 매우 異例的인 일이었다.

    #2 20年 前으로 時計바늘을 돌려보자. 北韓의 核擴散禁止條約(NPT) 脫退로 始作된 1993年 1次 北核 危機가 마무리된 後, 平壤은 ‘歷史의 大河’라는 實話小說을 통해 當時의 政策 論議構造를 公開한 바 있다. 外交部(1998年 外務省으로 名稱 變更)와 原子力工業部 主要 當局者에 科學技術 專門家 20餘 名이 結合한 ‘核 常務兆’(우리의 태스크포스에 該當)가 對應方案을 論議하는 場面이었다. 강석주 當時 外交部 第1部部長이 이끌었던 이 核 常務條는 以後 狀況이 워싱턴의 寧邊 核施設 制限攻擊 檢討 等 軍事的 對立으로 飛火하면서 人民武力部 關係者들까지 參與하는 形態로 發展했다. 1次 核 危機의 主要 局面마다 ‘祕藏의 한 手’를 苦心하고 企劃해낸 主體였다.

    못 나가던 人物들 拔擢한 理由

    ‘판가리(版갈이) 大戰.’ 지난해 12月 銀河3號 로켓 發射를 始作으로 2月 3次 核實驗을 거쳐 現在까지 5個月間 이어진 强度 높은 挑發 行步를 北側 媒體들이 일컫는 用語다. 單純히 南北 或은 北·美 間 氣 싸움이 아니라, 東北亞 全體의 國際秩序 版圖를 自身이 意圖하는 바대로 바꿔내겠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平壤에서 이 ‘판가리 大戰’을 이끄는 이들은 누구이고, 果然 强度 높은 挑發의 政策決定 過程에는 어떤 利害關係가 얽혀 있을까. 2013年版 ‘核 常務條’의 主要 멤버들을 살펴보는 것은 北韓의 行步를 가늠할 수 있는 重要한 잣대 中 하나다.

    먼저 앞서 寫眞 속 人民軍 最高위 指揮官 4名부터 살펴보자. 3次 核實驗 以後 한 달餘 北韓이 쏟아낸 ‘말 爆彈’ 政局에서 이들이 主導的인 구실을 했다는 點은 疑心의 餘地가 없다. 注目할 事實은 이들이 김정일 時代의 軍 首腦部에 비해 正統派 軍事指揮官이 아니라는 點이다. 고재홍 國家安保戰略硏究所 硏究委員은 “오극렬, 김명국, 김정각 等 移轉 時期 核心部에 밀려 作戰이나 戰略 分野에서 頭角을 나타내지 못했던 ‘2類들’”이라고 評한다. 현영철 總參謀長만 해도 後方인 平安北道 8軍團長을 오래 지냈을 뿐 前方軍段을 맡은 적이 없고, 部下가 追越해 昇進했을 程度로 競爭에서 밀리던 人物이라는 것이다. 實際로 現 總參謀長은 2010年까지 ‘勞動新聞’에 한 次例도 寫眞이 실린 적이 없을 程度로 存在感이 적었다.



    김정은 時代의 첫 人民軍 總參謀部 作戰局長이었던 최부일度 마찬가지다. 國境警備代表團 團長 等 北韓 側 媒體들이 紹介하는 略歷은 華麗하지만, 北·中 接境地域 保安問題를 主로 管轄해온 그의 經歷은 人民軍 全體 次元의 電力 運用이나 戰略 構成과는 距離가 멀다. 一角에서 “김정은에게 籠球를 가르쳐준 因緣으로 拔擢된 것”이라는 所聞이 나왔던 것 또한 그의 經歷이 人民軍 指揮體系의 核心 고리인 作戰局長을 맡기에 適切치 않았던 탓이 컸다.

    김영철 偵察總局長의 境遇 南北 間 軍事對話를 主로 擔當했던 人物로, 亦是 全體 非正規戰 前歷을 運用하는 偵察總局을 책임지기에는 經驗이 짧다. 核과 미사일을 管轄하는 것으로 알려진 戰略로케트君의 김락겸 司令官은 더욱 그렇다. 掌令(將星)으로 昇進한 지도 얼마 되지 않은 그가 以前 作戰局長의 任務 가운데 가장 重要한 部分을 넘겨받은 이 자리를 堪當하기에는 格이 맞지 않는다는 게 人民軍 人事 變動을 觀察해온 專門家들의 評價다. 예컨대 김정일 時代의 마지막 作戰局長이었던 金明國은 1980年代부터 中東國家에 對한 미사일 輸出에 關與했던 베테랑이었다.

    판을 읽는 3個 端緖

    北側이 올해 들어 作戰局長을 최부일에서 이영길로 交替한 것 또한 이러한 限界를 勘案한 結果로 解釋할 수 있다. 寫眞 속 人物 가운데는 江原道 最前方의 5軍團長을 지낸 이영길 程度가 相對的으로 作戰이나 戰略問題에 專門性이 있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다만 2000年代 初까지 李泳鎬 前 總參謀長과 昇進競爭을 벌였던 그는 2009年 後繼世襲 過程에서 다음 世代 人民軍을 責任질 人物로 김정일 國防委員長의 最終 選擇을 받지 못했다. 거꾸로 말해 1順位는 아니었다는 뜻이다.

    整理하자면 現在의 人民軍 首腦部는 ‘김정일 時代에는 잘나가지 못했던 人物들’로 채워졌다. 特히 이런 흐름이 加速化한 것은 지난해 7月 있었던 李泳鎬 總參謀長의 更迭과 김정각 人民武力部長의 退陣이다. 人民軍 內 最高 엘리트 코스를 밟아 乘勝長驅했던 이들은 2010年을 전후해 김정일 委員長이 앞으로 人民軍을 責任질 人物로 落點한 사람들이었고, 金 委員長의 葬禮式 當時 靈柩車를 遂行했던 이른바 ‘實勢 8人坊’에 包含됐다. 아버지가 直接 골랐던 이들 ‘最高 實力派’들을 모두 쳐내고, 2線에 있던 人物들을 拔擢해 構成한 것이 現在의 首腦部인 셈이다.

    올해 들어서야 陣容이 完了된 이들의 不安定한 位置는 3月 한 달間 緊張高調 局面이 前例 없이 거칠었던 理由가 무엇인지 가늠케 해준다. 軍事戰略에 立脚한 計算과 專門性 있는 判斷보다 自身들을 拔擢해준 金 第1祕書에 對한 忠誠을 最優先順位에 올려둔 結果로 보이기 때문이다. 北側이 이른바 最高指導者의 ‘尊嚴’ 問題에 對해 極히 敏感한 反應을 보인 것도 마찬가지로 解釋할 수 있다고 고재홍 硏究委員은 分析한다.

    이렇듯 極端的인 緊張 高調와 對南·對美 威脅을 쏟아내던 平壤의 行步는 4月 들어 若干의 變化를 보이기 始作한다. 첫 始作은 4月 3日 北側의 開城工團 通行制限 措置였다. 그間의 흐름이 單純히 威脅 水位를 높여가는 패턴을 고스란히 따른 것이었다면, ‘나가는 것은 막지 않겠다. 그 代身 들어오지는 못한다’는 通行制限은 매우 精巧하게 設計된 行動이었다. 正常的인 工團 運營을 不可能하게 만들면서도 그 責任을 南側에게 돌리는, 그와 同時에 南側이 마땅한 對應方法을 찾기 어렵게 만드는 巧妙한 한 數였기 때문이다.

    이는 强勁 一邊倒의 行動패턴만을 이어온 人民軍 首腦部 次元에서는 企劃하기 어려운 ‘創意的이면서도 老鍊한’ 數였다. 軍部가 論議를 主導하던 以前 狀況에서 벗어나 더욱 큰 틀의 力量과 企劃力이 動員되기 始作했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觀測은 4月 8日 김양건 黨 中央위 對南祕書가 開城工團을 訪問한 뒤 稼動 暫定中斷 및 北側 勤勞者 撤收를 發表하면서 더욱 힘을 얻게 됐다. 2013年 ‘核 常務兆’에서 對南라인 等 軍部 外의 오랜 經驗을 가진 老獪한 人物들이 發言權을 行使하기 始作했음을 示唆하는 까닭이다.

    統一戰線部長을 兼任한 김양건 祕書는 2次 南北頂上會談 以後 對南라인이 大大的으로 肅淸됐을 때 거의 唯一하게 남은 核心 中 核心이다. 外交部에서 官僚 經歷을 始作했다가 黨 國際部로 자리를 옮긴 뒤에는 權力 뒤便으로 밀려났지만, 後繼 論議가 本格化된 2000年代 後半 들어 統一戰線部長을 맡으면서 乘勝長驅하기 始作했다. 金 第1祕書의 姑母夫인 張成澤 國防委員會 副委員長과의 오랜 因緣을 바탕으로 後繼構築 過程에서 大衆·對南 關係를 事實上 모두 指揮하는 實勢로 자리매김했다.

    북한 ‘판갈이 大戰’ 참모는 누구냐

    김양건 北韓 勞動黨 對南 祕書 兼 統一戰線部長.

    4月 中旬 류길재 統一部 長官의 對話 提議와 존 케리 美國 國務部 長官의 “對話의 길은 열려 있다”는 發言에 對해 北側이 보인 反應도 눈여겨볼 必要가 있다. 4月 14日 祖國平和統一委員會(조평통) 代辯人 談話 形式으로 流 長官의 對話 提議를 “狡猾한 術策”이라며 拒否했던 平壤은 케리 長官의 言及에 對해서는 한동안 沈默을 지키다 18日에 이르러서야 “欺瞞의 極致”라며 砲門을 열었다. 이 나흘의 時差는 對南라인과 對美라인의 狀況判斷 差異 亦是 內部 政策論議에서 重要한 意味를 갖기 始作했음을 보여준다. 이날을 契機로 北側은 “유엔 安全保障理事會의 制裁措置를 解除해야 對話가 可能하다”며 本格的으로 美國을 向한 메시지를 던지기 始作했다.

    現在 論議에 參與하고 있을 것으로 보이는 代表的인 對美라인으로는 강석주 內閣 副總理와 김계관 外務省 第1負傷이 꼽힌다. 1939年生으로 1次 核 危機 當時 對美協商을 主導했던 姜 副總理는 80年代 初 40代 젊은 나이에 外交部 首腦部에 入城한 뒤 30年 以上을 對美라인 核心으로 일해왔다. 2010年 9月 그가 副總理에 任命되고 난 뒤에는 後任者인 김계관 外務省 第1負傷이 對美라인의 實勢라는 見解도 만만찮다. 1943年生으로 73年 外交官 生活을 始作한 그 亦是 90年代 初부터 北·美 對話에 本格的으로 參與한 베테랑 中 베테랑이다.

    생각의 差異가 의미하는 것

    4月 18日 벌어진 또 다른 異例的인 事件도 平壤 政策決定 構造 內部를 엿보게 해주는 興味로운 端初다. 이른바 ‘技士 交替’ 事件이다. 이날 午前 ‘朝鮮中央通信’은 “이番에 우리는 美國과 事實上 한 次例 核戰爭을 치른 것이나 같다”면서 “美國은 最新 核戰略 武器들과 裝備들을 總動員하여 우리를 威脅하였다”고 過去形을 使用했으나, 午後 들어 ‘조선중앙TV’는 이를 “核戰爭을 하고 있는 것이나 같다” “우리를 威脅하고 있다”고 現在進行形으로 바꿔 傳했다. 對南라인의 主要 機構인 祖平統의 談話文이 公開된 지 몇 時間 만에 修正된 것이다.

    이러한 混線은 4月 中旬 以後 狀況 對應과 關聯해 北側의 政策決定權者들 사이에 異見이 있음을 暗示한다. 예컨대 戰爭 局面이 事實上 終了됐다고 쉽게 생각하는 對南라인과 如前히 戰爭 狀態를 持續的으로 强調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軍 首腦部의 判斷 差異다. 實際로 앞서 살펴본 實話小說 ‘歷史의 大河’는 1次 核 危機 當時에도 이러한 異見이 反復的으로 나타났다고 公公然히 記錄하고 있다. 한 軍部 人士가 外交部 首腦部에게 “우린 外交官들의 處事에 不滿이 없지 않다. 그렇게 옴질옴질하니까 놈들(美國)李 팀스피리트를 再開하는 것”이라며 言聲을 높이는 대목이 代表的이다.

    勿論 差異도 있다. 1次 核 危機가 NPT 脫退라는 外交部의 最初 企劃에 依해 始作됐다가 以後 軍部까지 參與하는 方式으로 展開된 反面, 2013年 ‘판가리 大戰’은 軍部의 强勁行步로 始作해 對南·對美 等 外交 次元의 後續措置로 이어졌다는 點에서 다른 樣相을 띤다. 卽 1993年 核 常務條가 外交部를 中心으로 軍部가 結合한 形態였다면 이番에는 軍部를 中心으로 外交部나 統一戰線部가 結合한 形態일 公算이 크다는 뜻이다.

    4月 下旬 들어 北側의 挑發 行進이 小康局面에 접어든 것은 이제 平壤이 冷靜한 損益計算에 突入했음을 뜻한다. 韓國과 美國의 움직임을 지켜보며 미사일·核 實驗 等 追加 行動에 나설지 말지를 決定하겠다는 뜻이다. 이러한 苦悶의 渦中에 軍部와 外交·對南라인 사이의 見解 差異는 아무리 些少하더라도 적잖은 意味를 가질 수 있다.

    特히 이러한 苦悶이 結局 어떻게 歸結될지는 專門家 사이에서도 意見이 가장 엇갈리는 部分이다. 이승열 梨花女大 統一學硏究院 硏究委員은 “이미 軍部가 主導하는 판은 끝났고 主導權도 그들을 떠났다”고 分析한다. 反面 匿名을 要請한 軍當局者는 “1次 核 危機에 비하면 只今은 論議構造 自體가 軍部에 크게 기울어진 狀態”라며 强勁行步를 이어갈 公算이 크다고 傳했다. 興味롭게도 平壤이 이를 決判 짓게 될 決定的 時點이 언제일지, 그 判斷基準이 무엇인지에 對해서는 專門家들의 見解가 하나로 모인다. 바로 5月 7日로 豫定된 韓美 頂上會談과 以後 두 나라가 내놓을 對話 카드의 수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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