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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거나 저쨌거나 또 떴시유~|주간동아

週刊東亞 6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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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거나 저쨌거나 또 떴시유~

돌아온 최양락 빵빵 터지는 ‘진솔 개그’ 發揮

  • 강일홍 스포츠조선 演藝專門記者

    入力 2009-02-11 11: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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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쨌거나 저쨌거나 또 떴시유~
    7080代票 개그맨 최양락(47)李 2009年 ‘藝能’界에 ‘新鮮한’ 突風을 일으키고 있다. 唯獨 빨리 달궈지고 빨리 식는 우리 大衆文化의 速度戰을 考慮하더라도 可히 신드롬 水準이다. 최양락은 年初 ‘野心滿滿 藝能選手村’(SBS) ‘明朗히어로’(MBC) ‘해피투게더 시즌3’(KBS2) 等 各 放送社의 代表 프로그램에 잇따라 出演하며 요즘 말로 빵빵 터지는 藝能 솜씨를 선보였다. 劉在錫도 姜鎬童도 최양락 옆에서 끼어들 틈을 찾지 못하는 것을 보고 視聽者들이 衝擊을 받을 程度였다. 機敏한 藝能 프로그램 演出者들이 그를 涉外하기 위해 움직였고, 그는 곧바로 10年 가까이 등졌던 TV에 固定 MC로 復歸했다.

    벌써부터 藝能 版圖 變化를 점치는 건 多少 性急하다. 이것도 7080 復古風의 한 흐름일 뿐이라고 말하는 건 최양락의 깊이와 藝能판을 너무 좁게 읽는 것이다. 時間의 層이 쌓여 만들어진 大衆文化의 흐름이 하루아침에 바뀔 理 없으니 말이다. 하지만 토크버라이어티의 ‘援助’ 최양락이 正月 한 달 맛보는 季節 飮食으로 끝날 것 같진 않다.

    유재석을 壓倒한 최양락의 登場에 10, 20代 視聽者들도 ‘新鮮하다’는 反應을 보였다. 新世代式 개그에 食傷한 중長年 視聽者들은 특별한 關心에 반가움까지 더해 그를 歡迎했다.

    긴 歲月 팬들의 視線에서 벗어나 있던 최양락은 이제 밀물처럼 밀려드는 인터뷰 要請에 幸福한 悲鳴을 지른다. 그는 果然 後輩들이 한동안 左之右之해온 藝能의 地形圖를 바꿀 수 있을까.

    최양락은 固定 MC를 맡게 된 ‘野心滿滿’ 첫 錄畫 直後 인터뷰에서 “좀 아쉬운 구석이 있다”고 所感을 밝혔다. 出演者들끼리 말싸움을 誘導하고 해프닝을 만들어 당황스런 場面을 演出하는 스타일도 問題가 있다고 指摘했다. 그것은 그동안 왜 그가 藝能에서 외면당해야 했는지에 對한 間接的인 自己 診斷이기도 했다.



    “저는 相對方의 失手에 依한 웃음보다는 센스 있는 狀況 애드리브로 빵 터뜨리는 스타일이에요. 한 番에 모든 걸 뽑아내기보다는 서로 傷處를 주지 않으면서 물처럼 흘러가야 한다고 생각하지요. 그게 요즘 視聽者들의 趣向과는 맞지 않는 거죠. 웃음이 터질 때까지, 自虐이든 加虐이든 無限競爭을 시키는 ‘독한 토크’가 亂舞하면서 視聽者들의 입맛을 바꿔버렸다고 할까요?”

    最近 그가 가장 많이 받는 ‘독한’ 質問은 ‘유재석 姜鎬童과 競爭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그런 競爭 構圖는 無意味하다. 時間과 流行이란 江물을 完全히 거꾸로 돌리는 건 不可能하다. 옛것은 追憶으로 暫時 맛볼 수만 있는 거다.”

    그가 願하는 바는 아니지만 設令 말싸움으로 강호동을 이기거나 굴복시킨다 해도 억지가 될 수밖에 없다는 게 그의 現實 認識이다.

    ‘往年에’ 姜鎬童이나 유재석은 그의 補助者였지만, 只今은 그가 그들의 固定 패널이다. 그는 그것이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말한다.

    “周邊에선 後輩들과 부딪치게 돼 負擔스럽지 않느냐고 하지만 난 便安하기만 하다. 이제부터의 내 개그 人生은 보너스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人氣로 치면 강호동을 凌駕할 만큼 最頂點에 서봤던 그다. 그러다 사람들이 알아보지 못할 만큼 演藝人으로서 自尊心을 구겨봤다. 잘나가던 演藝人이 어느 날 退出됐다고 느끼는 心情은 겪어보지 않고는 모른다 한다. 마냥 樂觀的으로 보이는 그에게도 憤痛 터지는 날들이 왜 없었을까.

    최양락은 TV 出演 以後 “家族 앞에 떳떳한 男便과 아빠가 된 것 같아서 좋다”고 돌려 對答한다. “아유~ 아들놈이 워찌나 좋아하는지 親舊들한테 자랑하고 亂離가 났지유, 뭐.”

    길게 餘韻 남는 諷刺로 庶民 慰勞

    최양락의 人氣를 實感해보지 못했던 아들은 只今 中學校 2學年이다. ‘아빠가 有名해져서 親舊들에게 紹介하고 싶다’고 말하던 아들이다. 88年 結婚 以後 放送活動보다는 카페 運營 等 副業에 沒頭해온 아내 팽현숙의 속앓이도 좀 풀렸다고 한다.

    “내色은 하지 않지만 마누라야 아이들이 좋아하니까 좋아하는 거 같아요.”

    그에겐 이런 家族의 기쁨이 激勵가 되고 알게 모르게 勇氣를 북돋아주는지도 모른다. 每日 라디오 放送으로 빡빡한 日程에 쫓기는 최양락은 時間을 節約하기 위해 只今 아들과 함께 汝矣島에 아파트를 얻어 따로 나와 산다. 아내 팽현숙은 如前히 南楊州 漢江邊에서 副業을 하고 있다(중학생 아들의 學群도 考慮했다고 귀띔했다. 그는 처음부터 只今까지 誠實한 韓國型 家長이다).

    최양락은 1981年 MBC 개그 콘테스트에서 對象을 받으며 개그를 始作했으니 30年 가까운 履歷을 가진 셈이다. 初期엔 ‘유머 1番地’ ‘쇼 비디오자키’ 等 主로 KBS에서 活躍했고, 90年代 SBS 開局 以後론 ‘코미디 展望臺’ ‘좋은 親舊들’ 等에 出演했다. 明滅했던 지난 時間을 되돌아보면 그에겐 아버지와 아들이 함께 보며 웃었던 ‘유머 1番地’ 같은 온 家族 코미디 프로그램이 가장 큰 自負心이다.

    최양락은 時代가 變해도 自身을 바꿀 수는 없다고 말한다. 그래서 自身만의 獨特한 개그는 固守해간다는 생각이다.

    “제 개그를 보고 10代나 60臺가 熱狂할 수는 없겠죠. 제 나이 또래의 視聽者들이 웃고 즐길 수 있다면 제 所任은 다했다고 말할 수 있지요.”

    그는 8年째 進行하는 MBC ‘최양락의 재미있는 라디오’를 통해 이미 이를 實踐해왔다고 생각한다.

    최양락의 魅力은 痛快한 反轉이나 中毒的인 流行語에 있지 않다. 忠淸道 사투리가 多分한 그의 말套에서 느껴지는 것처럼, 그의 개그는 길게 餘韻이 남는 諷刺다. 그저 참고 사는 수밖에 없는 庶民들이 한마디씩 혼잣말처럼 던지는 듯한 그의 말 한쪽에 權力者를 꾸짖는 매운맛이 들어 있다. 굳이 웃기기 위해 ‘코너를 짜지’ 않고도 웃길 수 있는 底力이 그에게는 있다. 그의 웃음은 애初부터 末梢的인 말장난과는 次元이 달랐으니까. 只今 토크쇼에서 보여주는 眞率한 經驗談은 최양락이 아니면 개그로 엮어낼 수 없는 것들이다. 마음도 몸도 지친 사람들은 가난했지만 熱心히 살았던 ‘헝그리’韓 時節을 되돌아보며 최양락이라는 우리 時代의 개그맨을 다시 發見해냈다. 최양락 突風은 必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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