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現代 팬들이여 일어나라|주간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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現代 팬들이여 일어나라

밉相이었지만 野球는 잘하던 ‘현대 유니콘스’

  • 황규인 동아일보 記者 kini@donga.com

    入力 2017-10-30 14:0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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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始作은 帽子였다. 俳優 (배)收支가 지난달 始作한 SBS 드라마 ‘當身이 잠든 사이에’에 쓰고 나왔던 그 帽子 말이다. 그 帽子는 ‘王子님의 입맞춤’이었다. 그 帽子 하나로 10年 동안 잠들어 있던 ‘현대 유니콘스’가 눈을 떴다.

    눈을 뜬 現代를 일으켜 세운 건 미키 캘러웨이(42)였다. 美國 메이저리그 뉴욕 메츠는 10月 23日(現地時刻) 캘러웨이를 새 監督으로 임명한다고 發表했다. 캘러웨이 監督은 2005~2007年 현대에서 뛰면서 32勝 22敗(勝率 0.593), 平均自責點 3.56을 記錄한 外國人 投手 出身이다. 韓國 프로野球 出身이 메이저리그 팀 監督 자리를 차지한 건 캘러웨이가 처음이다.

    2007年까지 韓國 프로野球에는 現代라는 팀이 있었다. 현대는 解體 3年 前만 해도 韓國시리즈 2連霸를 차지했고, 프로野球 舞臺에 처음 뛰어든 1996年 以後 12年 동안 4番이나 챔피언 자리에 오른 팀이었다. 事實 現代 以前에 프로野球 歷史에서 ‘王朝’를 構築했다고 할 수 있는 팀은 해태(現 KIA) 타이거즈뿐이었다.

    그런데 왜 현대는 프로野球 팬들 사이에서 그렇게 乾燥한 狀態로 남아 있던 걸까. 現代家 ‘그리움’이라는 ‘축축한’ 낱말과 다시 連結되는 데 왜 10年이라는 歲月이 必要했던 걸까.





    현대, 그리고 쌍방울

    팀은 사라져도 팬은 남는다. 그래서 팀이 사라지면 ‘流民’을 自處하는 이들이 登場하곤 한다. 아니, 적어도 壬辰倭亂 때 軍隊를 보낸 明나라 皇帝(萬曆帝)의 祭祀를 지내며 明나라와 朝鮮이 次例로 亡한 뒤에도 日帝의 눈을 避해가면서 1937年까지 어떻게든 ‘떠받든’ 朝鮮 儒林처럼 ‘마지막 팬클럽’은 存在한다.

    예컨대 1999年 歷史 속으로 사라진 쌍방울 레이더스의 境遇 會員 1700餘 名이 如前히 인터넷 팬클럽에서 活動 中이다. 원맨밴드 달빛妖精 逆轉滿壘홈런(本名 이진원)은 2008年 3輯 앨범 ‘Goodbye Aluminium’을 내면서 運動場에 널브러진 쌍방울 마스코트를 表紙 寫眞으로 쓰기도 했다.

    率直히 現代와 쌍방울 모두 人氣 없는 걸로 有名하던 팀. 프로野球長에 歷代 가장 적은 觀衆(54名)李 찾은 건 이 두 팀이 맞붙은 1999年 10月 7日 全北 全州 競技였다. 그렇다면 成跡이라도 좋았던 현대(0.550)를 쌍방울(0.410)보다 더 그리워하는 사람이 많아야 하는 게 正常 아닐까. 게다가 프로野球 1群 舞臺에 屬한 期間 亦是 現代(12年)가 쌍방울(9年)보다 더 길다.

    하지만 結果는 正反對. 이날 競技의 被害者는 쌍방울이었고, 加害者는 현대였다. 쌍방울이 緣故地로 삼았던 全北은 元來 ‘해태의 땅’이었다(실제로 쌍방울은 45億 원을 주고 해태로부터 全北地域 緣故權을 사들였다). 그래서 쌍방울은 어쩐지 해태의 막냇同生 같은 느낌을 풍기기도 했다. 선동열과 배터리를 이루던 장채근이나 해태에서 ‘解決士’라는 別名을 얻었던 限對話 等 해태 出身 選手들이 末年에 이 팀에 몸담기도 했다. 무엇보다 쌍방울은 恒常 ‘가난한 팀’ 이미지였고, 實際로도 그랬다.

    현대는 달랐다. ‘현대 피닉스’라는 아마추어 팀으로 創團할 때부터 이 팀은 ‘選手 싹쓸이’처럼 否定的인 表現과 더 가까웠다. ‘別途 프로리그를 만들겠다’던 현대는 結局 470億 원에 仁川을 緣故地로 하던 太平洋 돌핀스를 引受해 프로野球 舞臺에 進入했다. 當時 ‘프로野球로 돈을 번 會社는 太平洋밖에 없다’는 우스갯소리가 나올 程度로 ‘桶 큰 베팅’이었다.

    ‘選手 蒐集’은 프로野球 舞臺로 뛰어든 뒤에도 달라지지 않았다. ‘롯데 1番 打者’ 전준호가 현대 유니폼을 입었고, 元來 해태로 갔어야 할 박재홍도 현대 유니폼을 입고 新人賞을 받았다. 트레이드된 後 活躍한 임선동 亦是 LG 트윈스 팬들 사이에서 좋게 記憶되기는 힘든 이름. 쌍방울에서도 박경완을 ‘사왔다’.

    그래도 이때까지는 元來 삼미 슈퍼스타즈, 청보 핀토스, 太平洋이 뿌리내리고 있던 仁川 팬들에게 傷處를 주지는 않았다. 한 仁川 팬은 “늘 應援팀이 가난했는데 현대가 引受하고 나서 富者집에 딸을 시집보낸 느낌이었다. 引受 첫해였던 1996年 韓國시리즈에 進出했을 때 ‘이제 우리 팀도 되겠네’ 싶었다”고 回想했다.



    현대, 그리고 SK

    그러나 ‘우리 팀’은 “서울로 가겠다”며 期於이 仁川 팬을 등졌다. ‘서울에 새 球場을 마련할 때까지만’ 안房 都市가 된 水原 팬들이라고 現代家 달가울 理 없었다.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은 모르는 사람이 없어도 ‘현대 유니콘스의 마지막 팬클럽’은 찾아보기 힘든 理由다.?

    그리고 2003年 쌍방울의 事實上 後身인 ‘現在 仁川 팀’ SK 와이번스와 ‘옛날 仁川 팀’ 현대가 韓國시리즈에서 맞붙었다. 이제는 釜山에 밀려서 그렇지, 仁川 사람 中에도 自己 故鄕을 構圖(球都·野球 都市)라고 評價하는 이가 적잖다. 果然 當時 仁川 팬들은 누구를 應援했을까.

    그前까지 SK로 應援팀을 바꿨다 2003年 韓國시리즈부터 다시 現代를 應援하게 됐다는 仁川 팬도 꽤 됐다. 한 仁川 팬은 말했다. “分明 몸은 SK 應援席에 있었는데 나도 모르게 現代 應援歌를 줄줄이 따라 부르고 있더라. 그 瞬間 ‘아, 딸이 아니라 첫 사랑이 富者집에 시집갔던 거구나. 할 수만 있다면 다시 사랑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이 不便한 關係는 오래가지 못했다. 詩集(현대전자)李 亡해가는데도 첫사랑은 씀씀이를 줄일 줄 몰랐다. 현대는 韓國野球委員會(KBO)에서 26年間 모은 ‘野球 基金’ 140億 원을 모두 쓰고 나서야 숨을 거뒀다. 運命의 장난이었을까. 현대그룹 ‘王子의 亂’ 以後 財政難에 시달린 現代家 歷史 속으로 사라진 2007年 韓國 프로野球 챔피언은 이제 確實히 仁川 팀이 된 SK였다. 偶然은 또 있다. ㈜현대유니콘스 母企業은 현대전자였다. SK그룹은 2011年 현대전자가 이름을 바꾼 하이닉스(HYundai electroNICS)를 引受했고, SK하이닉스는 全 世界 賣出 2位 半導體 會社로 成長했다.

    因果應報라는 이야기를 하려는 건 아니다. 加害者는 球團이었지 팬이 아니었다. 現代 팬이었다고 罪悚해야 할 必要는 없다. 오히려 破廉恥한 球團 때문에 現代 팬들은 數없이 ‘왜 그런 팀을 應援하냐’는 質問을 받았을 테다. 하지만 現代를 應援하는 理由는 다른 팀의 팬이 그 팀을 應援하는 理由와 조금도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野球 이야기만 하자면, 三星 라이온즈는 적어도 正規리그에서는 프로野球 歷代 最强팀이지만 現代 팬은 三星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프로野球 歷史에 存在하는 팀 가운데 맞對決 全的(121勝 6無 94敗)에서 三星에 앞서는 팀은 현대뿐이다.

    그러니 숨어 있는 現代 팬들이여, 그만 ‘縣밍아웃’을 付託드린다. 적어도 우리가 스스로를 할퀸 傷處는 다 나을 때가 되지 않았나. 맞다. 記者 亦是 ‘자랑스러운’ 현대 유니콘스 流民이다. 오랜만에 목 놓아 부른다. “최강희 눈이 커.”(현대 應援歌 가운데 一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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