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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파엘로 500周忌, 베토벤 250周年, 류관순 100周忌, 全泰壹 50周忌|週刊東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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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파엘로 500周忌, 베토벤 250周年, 류관순 100周忌, 全泰壹 50周忌

2020年 꼭 記憶해야 할 人物들

  • 권재현 記者

    confetti@donga.com

    入力 2019-12-30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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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탈리아 우피치미술관, GettyImages, 동아DB]

    [이탈리아 右피치美術館, GettyImages, 東亞DB]

    지난해가 레오나르도 다 빈치 500周忌였다면 올해는 라파엘로 500週期다. 미켈란젤로와 더불어 이탈리아 르네상스 3代 畫家로 꼽히는 라파엘로는 트로이카 가운데 가장 젊었다. 레오나르도보다 서른한 살, 미켈란젤로보다 여덟 살 어렸다. 두 先輩의 長點을 吸收하면서 구김살 없는 性情으로 타고난 天才性을 맘껏 꽃피웠다. 레오나르도의 人物描寫法을 발전시킨 수많은 聖母磁化와 미켈란젤로의 스토리텔링 技法을 繼承한 ‘아테네 學堂’ ‘갈라테이아의 勝利’가 代表作이다. 

    ‘어머니 自然이 그에게 征服될까 봐 두려워 떨게 만든 라파엘로의 무덤. 그의 죽음으로 自然마저 죽을까 봐 두려움에 떨게 만들다.’ 서른여덟 살에 夭折해 로마 판테온에 묻힌 그의 墓誌銘이다. 공교롭게도 自身의 生日인 4月 6日이 祭祀날이 됐다. 

    같은 이탈리아가 輩出한 最高의 映畫監督으로 꼽히는 페데리코 펠리니(1月 20日)는 誕生 100周年을 맞는다. ‘길’(1954)과 ‘카비리아의 밤’(1956), ‘달콤한 人生’(1960), ‘8과 1/2’(1963), ‘아마코드’(1974)를 監督한 그는 봉준호 監督의 ‘寄生蟲’을 통해 韓國 映畫 첫 首相의 期待感이 높은 아카데미 外國語映畫賞 最多 受賞(5次例)의 記錄을 保有하고 있다.

    4名의 獨逸人과 1名의 러시아人

    [GettyImages]

    [GettyImages]

    獨逸이 輩出한 傑出한 人物들의 記念日이 唯獨 많다. 于先 獨逸 近代哲學의 最高峯이자 辨證法 哲學者 헤겔(8月 27日)과 古典派 音樂의 最高峯으로 評價받는 惡性(樂聖) 베토벤(12月 17日)이 나란히 誕生 250周年을 맞는다. 헤겔 앞에 칸트가 있었다면 베토벤 앞에는 모차르트가 있었다. 이 둘은 칸트와 모차르트라는 燦爛한 成就를 克服하기 위한 至難한 努力으로 各各 哲學史와 音樂史에서 前人未踏의 境地를 開拓했다. 

    두 사람은 젊은 時節 가장 큰 影響을 받은 事件과 人物이 프랑스革命과 나폴레옹이었다는 共通點도 있다. 헤겔은 1806年 나폴레옹을 보고 “世界精神을 봤다”고 했으며 每年 바스티유 監獄이 陷落된 날이 되면 와인으로 自祝했다. 베토벤이 가장 아꼈던 3번 交響曲은 元來 나폴레옹을 念頭에 두고 作曲한 것이었으나 1804年 나폴레옹이 皇帝가 됐다는 얘기를 듣고 ‘에로이카(英雄)’로 題目을 바꿨다. 



    세 番째 獨逸人은 올해 逝去 100周忌(6月 14日)를 맞는 社會學者 막스 베버다. 歷史學者로 出發해 社會學者가 된 베버는 社會學을 歷史學으로부터 독립시켰고, 客觀的 科學과 主觀的 價値 判斷의 區別을 强調했다. 그가 克服하려 한 對象은 카를 마르크스였다. 베버는 마르크스의 辨證法的 唯物論에 맞서 生産力과 生産關係라는 下部構造 못지않게 上部構造를 形成하는 信念과 價値觀을 重視했다. 그의 代表作 ‘프로테스탄티즘의 倫理와 資本主義 精神’(1904~1905)은 近代 産業資本主義를 추동한 것은 마르크스가 말한 理由 同期보다 勤勉誠實을 통한 世俗的 成功을 重視한 칼뱅주의에 있음을 說破했다. 

    네 番째 獨逸人은 마르크스주의의 共同創始者 프리드리히 엥겔스다. 올해 誕生 100周年(11月 28日)을 맞는 엥겔스는 두 살 年上의 마르크스와 ‘共産黨宣言’을 共同執筆했다. 또 英國 맨체스터에 있던 아버지의 紡織工場을 물려받아 運營하면서 마르크스의 英國 亡命生活을 도와 마르크스의 最後 咀嚼 ‘資本論’李 빛을 보게 했다. 그런 點에서 마이크로소프트의 폴 앨런, 애플의 스티븐 워즈니악에 比肩될 人物이다. 그와 關聯해 記憶해야 할 한 名의 러시아人도 있다. 20世紀에는 엥겔스를 제치고 마르크스 다음으로 有名했던 마르크스주의자 블라디미르 레닌이 誕生 150周年(4月 22日)을 맞는다.

    不屈의 女丈夫들

    [GettyImages, Shochiku Eiga]

    [GettyImages, Shochiku Eiga]

    올해 꼭 記憶해야 할 女性도 많다. 그들에게 붙은 女性的 呼稱에 相關없이 不屈의 意志로 記憶됨이 마땅한 女性들이다. 5月 12日 誕生 200周年을 맞는 플로렌스 나이팅게일은 ‘白衣의 天使’로만 記憶해선 안 된다. 크림전쟁 期間 惡名 높은 英國軍 官僚主義에 맞서 싸우며 軍 醫療體系를 完全히 뜯어고쳤고 英國으로 돌아온 後에는 專門 看護學校와 女性醫科大를 세운 卓越한 組織家이자 行政家였다. 또 入院 中인 英國軍의 死亡率을 46%에서 2%로 떨어뜨리는 데 數學敎科書에서 배운 統計를 適用한 現代的 統計學者이기도 했다. 

    9月 28日 殉國 100週期를 맞는 류관순은 1919年 3·1萬歲運動의 單純 加擔者가 아니었다. 3月 1日 萬歲運動 行列에 梨花學堂 學友를 이끌고 同參했던 그는 故鄕으로 내려가 4月 1日 3000名 以上이 參與한 아우내 場터 萬歲運動을 直接 組織했다. 이를 鎭壓하던 日本軍의 銃劍에 父母를 모두 잃고 孤兒가 된 열일곱 살 少女는 끝까지 自身이 主動者라 밝혀 懲役 3年型을 言渡받았다. 그가 服役 途中 숨진 것 亦是 1920年 3月 1日 獄中 萬歲運動을 主導하며 끝까지 抗拒했기 때문이다. 

    6月 17日 誕生 100周年을 맞는 ‘日本의 그레타 가르보’ 하라 세쓰코는 志操 높은 女俳優의 代名詞다. 오즈 야스지로 監督의 페르소나로 ‘晩春’(1949), ‘麥秋’(1951), ‘東京 이야기’(1953)를 통해 傳統的 日本 女人의 代名詞가 된 그는 1963年 오즈 監督이 숨지자 마흔셋에 바로 隱退했다. 結婚도 하지 않고 徹底히 隱遁의 삶을 산 理由가 不滅의 이미지를 지키기 爲한 것이었음이 알려지면서 ‘그레타 위의 하라’로 불리게 됐다(공교롭게도 4月 15日은 가르보의 30週期다). 

    7月 23日 誕生 100周年을 맞는 ‘파두의 女王’ 아말리아 好드리게스는 포르투갈 貧民街에서 태어나 埠頭에서 노래를 부르며 오렌지를 팔아 延命하는 어린 時節을 보냈다. 1954年 프랑스 映畫 ‘테주강의 戀人들’에서 검은 드레스에 검은 숄을 걸치고 ‘검은 돛배’를 불렀다. 이 場面 하나로 포르투갈의 哀切한 傳統歌謠人 파두를 世界化시키며 1999年 숨질 때까지 포르투갈의 文化的 自負心으로 推仰받았다.

    悲運의 歌手들과 哀切한 이름들

    30週期를 맞는 悲運의 歌手들도 눈에 띈다. 1975年 ‘賢異와 덕이’라는 듀엣으로 데뷔해 ‘少女와 街路燈’ ‘작은 少女의 사랑이야기’ ‘뒤늦은 後悔’ 等의 히트曲을 남긴 天才 싱어송라이터 男妹 長峴·將德을 빼놓을 수 없다. 特히 장덕은 最年少(14歲) 싱어송라이터로 데뷔해 진미령, 이은하, 김범룡 等 無數한 歌手들의 作詞·作曲家로 脚光받았다. 1990年 2月 4日 舌癌에 걸린 오빠 장현을 病看護하다 집에서 藥물을 잘못 服用한 탓에 스물아홉 살에 夭折했고 6個月 뒤인 8月 16日엔 오빠 장현이 서른넷으로 그 뒤를 따랐다. 

    韓國系 러시아 록歌手 빅토르 崔도 있다. 1962年 高麗人 아버지와 우크라이나界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그는 頹廢的 西歐文化의 産物이라는 理由로 금기시되던 록 旋律에 全體主義 體制에 對한 批判的 歌詞를 실어 告發했다. 1981年 키노라는 밴드를 이끌고 데뷔해 5張의 앨범을 내면서 청춘스타로 떠올랐으나 1990年 8月 15日 疑問의 交通事故로 스물여덟 살에 숨졌다. 바로 그날 모스크바 아르바트 距離에 ‘오늘 超이가 죽었다’는 文句가 적혔고, 그 아래 ‘초이는 살아 있다’라고 쓰인 ‘초이 壁’이 생기면서 러시아 靑年精神의 象徵이 됐다. 

    韓國 文學評論界를 이끈 金炫의 30周忌(6月 27日)도 기다리고 있다. 金炫은 現實 參與를 强調한 ‘創作과 批評’을 이끈 백낙청, 文學的 完成度를 重視한 ‘世界의 文學’을 이끈 金禹昌과 더불어 3代 文藝誌로 꼽혔던 ‘文學과 知性’을 이끌었다. 수많은 詩人과 小說家의 감춰진 眞價를 드러낸 評論으로 數많은 문청의 사랑을 받았으나 4·19世代 評論家 가운데 가장 젊은 나이인 마흔여덟에 숨을 거두며 웬만한 作家 以上의 팬을 거느리게 됐다. 

    마지막으로 올해는 ‘내 죽음을 헛되이 말라’는 遺書를 남기고 焚身自殺해 韓國 勞動運動史에 횃불이 된 勞動者 전태일의 50周忌(11月 13日)와 ‘전태일 評傳’을 남기고 韓國 社會에서 드물게 左右를 넘나들며 尊敬받았던 조영래 辯護士의 30周忌(12月 12日)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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