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地域이 하나의 行政區域으로 登場하는 것은 高句麗 長壽王 때(475)로 每疏忽현(買召忽縣)이었다.
以後 新羅가 三國을 統一한 後 景德王 때 漢字式으로 바뀌어 소성현(召城縣)李 되었다. 高麗 肅宗(1095~1105) 때 肅宗 어머니의 內向(內鄕)이었던 關係로 慶源郡(慶源郡)으로 改稱·昇格되었다. 그 뒤 人種(1122~1146)때에 순덕王后 李氏의 內向이라 하여 인주(仁州)로 昇格되었는데 이자겸(李資謙)의 亂으로 인주 李氏가 沒落하다시피 하였으나 恭讓王 2年(1390)에 이르러 다시 敬遠部로 還元되었다.
그것은 ‘七大御鄕(七代御鄕)’이라 하여 文宗에서 人種에 이르는 7代 동안 高麗王室과 關聯이 있는 地域이었기 때문이었다. 朝鮮王朝가 開創되면서 敬遠部는 다시 印朱로 還元되었다. 그러나 太宗 13年 週(州)字를 가진 都護府 以下의 軍·縣 名을 山(山), 千(川) 두 글字 中 하나로 改正토록 하여 現在의 仁川으로 誕生하게 되었고,
그날 (1413年 10月 15日)을 기려 ‘仁川市民의 날’ 이 制定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