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攻襲에 어린이 안고 待避하는 가자地區 住民들. 聯合뉴스 提供
戰爭은 恒常 苛酷하다. 이番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間의 紛爭에서도 無辜한 市民들의 犧牲이 漸漸 늘어나고 있다. 休戰을 促求하는 목소리들이 커져가는 가운데 끝장(?)을 봐야 한다는 主張도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여기에는 集團的 憤怒가 決定的인 役割을 하고 있다. 敵을 ‘人間 以下’로 規定하고 無慈悲한 報復을 要求하는 목소리들이 적지 않다. 元來는 平和와 共存을 願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았을 테지만 한 番 紛爭이 觸發되고 나면 憤怒가 集團을 貫通하는 주된 情緖가 되는 現象은 흔히 觀察된다.
하지만 輿論이란 생각보다 쉽게 바뀌기도 해서 언제든 雰圍氣가 바뀌면 和解가 急물살을 타기도 한다. 헤브루대의 心理學者 로니 포랫에 依하면 集團的 感情이란 結局 集團의 目的이 變함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感情이란 어떤 事件이 發生하고 난 다음에 찾아오는 受動的인 反應인 것 같지만 實은 感情을 느끼는 사람이 어떤 目的과 動機를 가지고 있는지에 따라 크게 달라지곤 한다.
例컨대 큰 被害를 보았을 때 身邊의 安全을 優先視해야 한다고 여기면 두려움을 느끼고 逃亡을 치게 되지만 被害를 가져온 相對와 싸워서 이기는 것이 目的이라면 憤怒를 느끼게 된다. 이렇게 사람들마다 感情에 對한 ‘記號’가 달라서 安全을 確保하는 것보다 싸워서 이기는 것을 더 選好하는 사람이라면 憤怒를 더 자주 더 크게 느낀다는 發見들이 있었다.
포랫에 依하면 集團的 感情도 마찬가지다. 集團의 目的이 무엇이냐에 따라 달라지는 傾向을 보인다. 例를 들어 紛爭이 일어난 後 平和的으로 解決하기보다는 싸워서 이기는 것이 우리 集團에게 더 큰 利得이 된다는 雰圍氣가 形成되면 많은 사람들이 憤怒를 느끼게 되지만 平和的인 解決이 長期的으로는 더 重要하다는 雰圍氣가 形成되면 憤怒는 수그러들고 相對方을 容恕해보려는 雰圍氣가 形成된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사이의 紛爭에서도 생각보다 狀況에 따라 서로에 對한 感情의 溫度差가 크게 變化하는 現象이 觀察되었다.
그러니까 많은 사람들이 集團的으로 일어난 事件에 對해 어떻게 느낄지 決定할 때 全體的인 ‘雰圍氣’를 살펴보고 只今 社會가 憤怒와 盲目的인 愛國心, 사이다 같은 시원함을 願하는지, 아니면 冷徹함과 長期的인 解法을 願하는지에 따라 생각보다 쉽게 感情的 路線을 바꾼다는 것이다.
南北關係나 韓日 關係도 한창 緊張이 高調되었다가 또 갑자기 雰圍氣가 좋아지기도 하는 것처럼 輿論이란 한 番 물살을 타면 모두가 한 方向으로 움직이는 性質을 띄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點에서 輿論을 形成하는 役割을 하는 言論이나 리더들의 役割이 한 社會의 運命을 쥐고 있다고 해도 過言이 아닌 듯 보인다. 싸움과 報復을 부추기는 목소리들이 많은지, 아니면 人間다움을 잃지 않을 것을 促求하는 목소리들이 많은지에 따라 많은 것이 달라진다.
勿論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사이의 紛爭은 複雜한 歷史를 가지고 있는 만큼 向方을 豫測하기 힘들지만 可及的 平和的인 解決을 통해 無辜한 犧牲이 늘어나지 않기를 바래본다.
Porat, R., Halperin, E., & Tamir, M. (2016). What we want is what we get: Group-based emotional preferences and conflict resolution. Journal of 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 110(2), 167–190. https://doi.org/10.1037/pspa0000043
※筆者紹介
朴軫永.
《나, 只今 이대로 괜찮은 사람》, 《나를 사랑하지 않는 나에게》를 썼다. 삶에 도움이 되는 心理學 硏究를 알기 쉽고 共感 가도록 풀어낸 冊을 통해 讀者와 꾸준히 疏通하고 있다. 온라인에서 '지뇽뇽'이라는 筆名으로 活動하고 있다. 現在 美國 듀크대에서 社會心理學 博士 課程을 밟고 있다